제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진료하며 좋았던 것 중 하나는 한국에서는 쉽게 만나기 어려웠던 다양한 사람들과 가까이 지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중에는 유대인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유대인들의 교육법이나 돈에 대한 철학에 관한 이야기를 꽤 많이 듣습니다. 저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봤지만, 미국에 와서 실제 유대인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기 전까지는 그들의 생활 속에서 돈에 대한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직접 볼 기회는 없었습니다.
그러다 친하게 지내던 유대인 가족의 성년식(Bar/Bat Mitzvah)에도 참석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날 제가 아주 재미있게 본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이의 친척들이 성년을 축하하면서 상당한 돈을 선물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경험했던 가족에서는 이런저런 친척들의 선물을 합쳐 대략 3만 달러 정도가 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국 돈으로 생각하면 아이에게 주는 선물치고는 상당히 큰돈입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어린아이에게 이 많은 돈을 줘서 뭘 하라는 거지?”
좋은 컴퓨터를 사라는 걸까?
나중에 자동차를 사라는 걸까?
대학 등록금으로 쓰라는 걸까?
그런데 제가 들은 이야기는 전혀 달랐습니다.
“S&P 500이나 Nasdaq-100 같은 인덱스에 투자해 놓아라.”
그리고 그냥 두라는 겁니다.
10년, 20년.
저는 그 이야기가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돈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돈을 바로 소비하지 않고 앞으로 20년 동안 일하게 만드는 방법까지 가르쳐준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부부 합산으로 3만 달러 정도까지 증여세 없이 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참고로 미국의 증여세 규정은 해마다 바뀌며, 현재의 연간 증여세 제외액과 당시 제가 경험했던 가족의 3만 달러 선물은 별개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3만 달러는 그 성년식에서 친척들의 선물을 합쳐 받은 대략적인 금액입니다.
미국에서 진료하며 결국 ETF를 보게 된 이유
저도 개별 주식의 미래를 정확하게 맞힐 능력은 없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이 마찬가지일 겁니다.
지금 돌아보면서 “20년 전에 애플을 샀어야지.” “엔비디아를 샀어야지.”라고 말하는 것은 쉽습니다.
문제는 앞으로 20년 뒤에 어느 회사가 최고의 회사가 되어 있을지를 오늘 맞히는 것입니다.
그건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ETF의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어느 회사가 이길지 모르겠으면 강한 회사들을 묶어서 사자.”
S&P 500을 추종하는 ETF를 사면 미국을 대표하는 대형 기업들에 한꺼번에 분산 투자하는 효과를 얻습니다.
Nasdaq-100을 추종하는 ETF는 기술·성장기업의 비중이 훨씬 높습니다. 그만큼 높은 성장을 경험한 시기도 있었지만 가격 변동도 크고 크게 하락할 위험 역시 높습니다.
ETF라고 해서 안전한 것도 아니고 돈을 무조건 벌게 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ETF의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단순합니다.
주식을 잘 모르는 사람이 앞으로 어떤 기업이 승자가 될지 일일이 맞히지 않아도 시장 전체 또는 주요 기업들의 성장에 장기간 참여할 수 있다는 것.
저에게는 그게 ETF의 가장 큰 매력이었습니다.
그때 3만 달러를 정말 넣어두었다면?

그러다 저도 궁금해졌습니다.
20년 전에 $30,000을 넣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지금 얼마가 됐을까?
최근 20년의 실제 시장 성과를 기준으로 배당을 다시 투자했다고 가정해 대략 계산해보면 상당히 재미있는 숫자가 나옵니다. 세금과 각종 비용은 제외한 단순 비교입니다.
| 20년 전 $30,000 투자 | 연환산 수익률 약 | 20년 후 약 |
|---|---|---|
| S&P 500 | 11% | $246,000 |
| Nasdaq-100 | 16% | $597,000 |
S&P 500이었다면 3만 달러가 대략 24만6천 달러.
Nasdaq-100이었다면 대략 59만7천 달러입니다.
물론 제가 당시 들었던 것처럼 무조건 “20년이면 30배가 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 결과도 시작일과 종료일, 배당 재투자 여부 등에 따라 달라집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실제 숫자가 더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30,000 → 약 $246,000
그리고 Nasdaq-100이었다면
$30,000 → 약 $597,000
처음 3만 달러도 큰돈이지만, 정말 무서운 것은 그다음부터입니다.
시간이 돈에 붙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지난 20년의 결과가 앞으로 20년에도 반복된다는 보장은 전혀 없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처럼 시장 전체가 크게 무너질 수도 있고, Nasdaq-100처럼 성장주 비중이 높은 지수는 훨씬 큰 폭으로 오르내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ETF를 “연 몇 퍼센트를 보장해주는 상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장기간 미국 기업의 성장에 참여하는 하나의 투자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은행 이자가 높아져도 굳이 ETF를 해야 할까?

은행 이자가 높아지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은행에 넣어놔도 이자를 꽤 주는데 굳이 주식시장에 투자해야 하나?”
충분히 합리적인 질문입니다.
특히 가까운 시일 안에 써야 하는 돈이라면 저는 주식시장의 과거 수익률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은행 예금이나 단기 미국 국채처럼 원금의 안정성과 유동성을 우선해야 하는 돈도 분명히 있습니다.
미국 금리의 역사를 보면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중반은 지금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금리 시대였습니다.
그 이후 금리는 장기적으로 크게 낮아졌고, 최근 다시 금리가 상당히 올라간 시기가 있었지만 당시와 같은 수준이 계속 유지된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제가 중요하게 보는 것은 오늘 은행에서 몇 퍼센트를 주느냐가 아닙니다.
돈을 언제 쓸 것인가입니다.
1~2년 뒤에 써야 할 돈과 20년 동안 사용하지 않을 돈을 똑같은 방식으로 관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20년 동안 쓰지 않을 돈이라면 은행 이자만 보는 것과 기업의 성장에 투자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선택입니다.
최근 20년 동안 S&P 500과 Nasdaq-100이 좋은 성과를 냈다고 해서 앞으로도 연 11%, 16%를 준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어떤 해에는 20~30% 이상 오를 수도 있고, 반대로 크게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ETF 투자에서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올해 몇 퍼센트를 벌 것이냐가 아니라 얼마나 오랫동안 시장에 머물 수 있느냐입니다.
주식을 몰라도 ETF를 알아야 하는 이유
주식 이야기를 하면 많은 사람이 부담스러워합니다.
재무제표를 봐야 할 것 같고, 경제 뉴스를 매일 읽어야 할 것 같고, 좋은 기업을 찾아야 할 것 같고, 언제 사고 언제 팔아야 하는지도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저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ETF를 이해하고 나면 질문이 조금 달라집니다.
“다음에 어떤 주식이 오를까?”
가 아니라
“나는 앞으로 10년, 20년 동안 미국 경제와 기업들이 지금보다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이 질문에 가까워집니다.
물론 미국 경제가 계속 성장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S&P 500도 하락할 수 있고 Nasdaq-100도 큰 폭으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당장 필요한 돈을 넣어놓고 기다리는 투자는 위험합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을 돈이라면 저는 ETF라는 방법을 최소한 알고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워런 버핏도 아내에게 남긴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더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투자자 중 한 명인 워런 버핏(Warren Buffett)입니다.
평생 수많은 기업을 분석하고 투자해서 엄청난 부를 만든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자신의 아내를 위한 돈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간단한 방법을 이야기했습니다.
버핏은 Berkshire Hathaway의 2013년 주주서한에서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아내를 위해 남겨지는 현금을 어떻게 투자할지에 대한 지침을 공개했습니다.
10%는 단기 미국 국채에 넣고,
90%는 수수료가 매우 낮은 S&P 500 인덱스 펀드에 투자하라.
구체적으로 Vanguard의 저비용 S&P 500 인덱스 펀드까지 언급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가 참 재미있습니다.
평생 주식을 연구한 세계적인 투자자가 자기 가족에게 남긴 방법이 수십 개 종목을 분석해서 사고파는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S&P 500 인덱스였습니다.
그 성년식에서 제가 본 것은 3만 달러가 아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날 제가 본 것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 3만 달러라는 금액 자체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에게 돈을 주는 문화는 어느 나라에나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아이가 태어나면 돈을 주고, 돌잔치에도 돈을 주고, 세뱃돈도 주고, 대학에 들어가도 돈을 줍니다.
그런데 제가 그 유대인 가족을 보면서 인상 깊었던 것은 그다음이었습니다.
“이 돈으로 뭘 살까?”
가 아니라
“이 돈을 앞으로 20년 동안 어떻게 일하게 만들까?”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3만 달러를 받아서 3만 달러어치를 소비하면 그걸로 끝입니다.
하지만 그 돈을 투자하고 20년을 기다리면 완전히 다른 결과가 만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투자에는 위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날 이후 돈을 보는 방법에 대해 한 가지는 확실히 배우게 됐습니다.
사람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돈도 일하게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돈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는 것.
어쩌면 그것이 제가 미국에서 생활하고 진료하면서 배운 가장 재미있는 돈 공부 중 하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DrDad.KR Note
저는 미국에서 진료하는 치과의사이며 전문 투자자나 재무상담사가 아닙니다. 이 글은 제가 미국에서 생활하며 직접 경험한 일과 투자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공유하기 위한 글입니다. 특정 ETF, 주식 또는 금융상품의 매수를 권유하는 글이 아닙니다. ETF와 주식은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며 과거의 수익률은 미래의 수익률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투자 결정은 자신의 재정 상황, 투자 기간과 위험 감수 능력을 고려해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