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은 세계에서 가장 똑똑하고 숫자에 빠른 사람들 중 하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장기투자가 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오늘 주가가 얼마인지, 지금 팔면 얼마를 버는지, 다른 곳에 투자하면 더 벌 수 있는지 계속 계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미국에서 살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제 투자관을 바꿔놓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23년, 27년 동안 한 번도 팔지 않은 사람들
제 가까운 지인 중 한 사람은 자신이 산 주식을 23년 동안 한 번도 팔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27년 동안 보유했습니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수익이 많이 났는데 왜 팔지 않을까. 게으른 것일까, 아니면 수익을 실현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일까.
그래서 직접 물어봤습니다. 대답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이건 자산이다. 팔고 나면 세금을 낸다. 들고 있는 게 이득이다.”
실제로 그들의 수익은 엄청났습니다. 그런데 저를 더 놀라게 한 것은 수익률보다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산 회사가 23년, 2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살아남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오래 살아남을 회사를 어떻게 골랐느냐”고 물었더니, 그들도 결국 어느 정도는 운이었다고 말했습니다.
20~30년 뒤의 승자 기업을 지금 고를 수 있을까?
바로 이 부분이 저에게는 중요했습니다. 지금 훌륭해 보이는 회사가 20년, 30년 뒤에도 훌륭할 것이라고 확신하기는 어렵습니다. 기술은 바뀌고, 소비자는 바뀌고, 산업의 주도권도 바뀝니다.
그렇다면 한 회사를 정확히 맞히는 대신, 미국을 대표하는 여러 대형기업을 한꺼번에 보유하는 방법은 어떨까. 여기서 제가 다시 보게 된 것이 S&P 500입니다.

S&P 500은 고정된 500개 회사가 아니다
S&P 500의 중요한 특징은 구성 기업이 영원히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조건을 충족하는 새로운 대표기업이 들어오고, 경쟁력을 잃거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기업은 빠집니다.
즉, 20~30년 뒤의 승자 기업을 오늘 정확하게 맞히는 것과는 다른 접근입니다. 개별 기업은 바뀌어도 그 시대를 대표하는 미국 기업들을 담는 지수는 계속 이어집니다.
1957년부터 이어진 S&P 500
현재의 500종목 형태를 갖춘 S&P 500은 1957년 출범했습니다. 그 이후 미국 경제는 수많은 경기침체와 시장 붕괴를 경험했습니다. 닷컴 버블 붕괴, 2008년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 충격처럼 투자자가 견디기 어려운 순간도 반복됐습니다.

장기투자는 매년 10%씩 버는 투자가 아니다
장기 평균수익률이라는 숫자를 보면 사람들은 매년 비슷한 수익을 얻는다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실제 시장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크게 오르는 해도 있고, 두 자릿수로 떨어지는 해도 있으며, 회복에 시간이 필요한 시기도 있습니다.
그래서 장기투자의 핵심은 높은 평균수익률이라는 숫자 하나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큰 하락을 견딜 수 있느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자산을 찾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좋은 자산을 사고 오랫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가장 어려운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23년과 27년 동안 주식을 팔지 않았던 사람들을 보면서 제가 배운 것은 종목 선정 기술만이 아니었습니다. 시간도 자산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숫자에 빠르고 기회비용을 즉시 계산하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가장 어려운 투자 행동일 수 있습니다. 주가가 급등하면 팔고 싶고, 급락하면 도망가고 싶고, 더 좋아 보이는 종목이 나타나면 갈아타고 싶기 때문입니다.
미국 정치인들의 공개 보유내역에서도 보이는 S&P 500 ETF
미국 연방 의원들의 공개된 금융자산 자료를 정리하는 민간 데이터에서도 VOO나 SPY 같은 S&P 500 ETF를 보유한 사례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이를 “미국 의원들이 가장 많이 보유하는 ETF”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공개자료의 집계 시점과 방식에 따라 순위와 숫자는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S&P 500도 안전자산은 아니다
여기서 꼭 구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S&P 500은 예금이나 미국 국채 같은 의미의 안전자산이 아닙니다. 주식입니다. 시장이 무너지면 큰 폭으로 떨어질 수 있고, 투자 시점에 따라 상당 기간 손실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제가 S&P 500을 다시 보게 된 이유는 “절대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제가 27년 뒤 살아남을 한 회사를 맞힐 자신은 없지만, 시대에 따라 대표기업을 계속 바꾸는 바구니를 장기간 보유하는 방법은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살며 얻은 결론
저는 27년 뒤 어떤 회사가 세계를 지배할지 모릅니다. 지금의 대기업 중 누가 사라지고, 아직 이름도 익숙하지 않은 어떤 기업이 새롭게 등장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저는 한 회사의 미래를 맞히는 것보다, 그 시대의 대표 기업들을 계속 담고 있는 S&P 500이라는 구조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결국 장기투자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을 살지 결정하는 것보다, 좋은 자산을 산 뒤 오랫동안 기다리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DrDad.KR Note
저는 미국에서 치과를 운영하고 진료하는 치과의사이자 사업가이며 투자자문가가 아닙니다. 이 글은 제가 미국에서 살며 직접 보고 느낀 경험과 개인적인 투자 관점을 공유하기 위한 교육 목적의 콘텐츠입니다. 특정 주식이나 ETF의 매수·매도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주식투자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며, 과거의 수익률이 미래의 수익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